내 어릴 적 사진 속의 아버지는 늘 선글라스를 끼고 계셨다. 알이 커다란 검은 레이방 선글라스를 낀 젊은 아버지‥‥…그 오래된 선글라스의 기억이 아버지의 유품으로 완결되던 순간을 기억한다. 낡은 흑백 사진 속의 아버지도 어릴 적도 나도 이제 모두 사라져 없지만, 더 이상 낡지도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는 아버지의 선글라스. 사물의 기억보다 오래가는 것이 있을까? 시간과 공간과 마음을 뛰어 넘는, 아니 그 모든 것을 뭉뚱그려 한데 간직한 채 홀로 남는 사물의 끈질김에 섬뜩해질 때가 있다. 나는 사람이 죽을 때 남기는 유품 중에서 유독 안경이 마음속에 남곤 했다. 문득 김 구 선생의 동그란 안경이 떠오른다.
출처 · rhogallery.com/ko/hwang-julie-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