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 Korea 기반
사물이라는 것은 내가 그림을 처음 작업으로서 대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도 여전히 중요한 화두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키워갈 무렵 처음으로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다. ‘어떻게 사람을 사물처럼 볼 수 있을까?’ 인간을 물건으로 보겠다는 이 선언은 이를 들은 몇몇 사람들을 적잖이 당황스럽게 했고, 나 역시 순간적으로 이를 말로 뱉었을 때 기이한 서늘함을 느꼈다. 그림 안의 인간을 사물로 보기 위해서 우선 내 주변의 사물들을 그리는 것이 작업의 출발이었다. 학교 주변에 떨어진 솔방울에서부터, 돌, 책상 위의 과일들, 여행 가서 주운 조개들, 나무 조각, 그리고 주사위. 특히나 주사위는 내 정물화의 주요한 대상이었다. 당시 나는 늘 주사위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모든 주변의 일들을 주사위의 숫자를 상상하며 확률을 점쳐보곤 했다.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주머니 속 주사위를 꽉 붙들고 었던 기억이 있다. 그 검은 주사위를 주머니 속에서 손으로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꺼내 보기를 반복하며 ‘반드시 합격할 확률일 거야’라고 믿었지만 여러 차례 낙방했고 내 주머니에 더 이상 주사위가 없어져 갈 무렵, 지지부진한 면허 시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 나의 그림 속 주사위에는 숫자를 표시하는 1에서 6까지의 동그라미들이 사라졌다. 그 큐브의 형태로 남은 주사위를 주사위라고 할 수 있을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일종의 확률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래서 주사위를 그렸지만, 그 확률이라는 것이 나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도 나는 머릿속으로 주사위를 굴리고 그것이 돌아가는 상상을 자주 한다. 이후 나의 정물들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갔다. 직접 만든 정물과 추상화된 정물, 그리고 상상 속의 정물, 정물과 사람, 정물로서의 사람 등이 그것이다. 그 중 화가들의 이마를 그린 작업은 처음 사람을 사물로서 대했다고 생각한 작업이다. 나는 사진 속 한 화가의 머리통(특히 이마 부분)을 보고 감동했다. 그것에는 화가의 이름도, 그의 위대한 작품들도, 그의 삶도, 그의 아내와 자식도 없었고 그저 머리통과 빛나는 이마만이 있었다. 나는 이것이 사물로서의 사람의 현현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그리고자 했다. 어쩌면 나의 작업들은 내가 보고 듣고 느끼며 사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확인, 그리고 의심, 그에 따른 실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여전히 나는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베일에 가려진 것처럼 파악하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다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희망이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눈과 감각에 대한 확신과 동시에 그에 대한 의혹이 작업을 계속되게 한다. / 강민성 강민성 KANG, Minsung b. 1993 2026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졸업 예정 개인전 2025 여덟번째 정물화, 이목화랑, 서울 단체전 2024 살: 존재의 원소, 강태희 갤러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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