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박형지의 회화는 역행한다. 그가 만드는 이미지는 시작에서 완성이라는 종착점으로 향해 나아가기보다 끝없는 수행의 과정 속에서 불현듯 드러난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흔적들은 작가가 빈 화면 앞에서 집요하게 실패하고 망치기를 계속해간 시간의 중첩이다. 의도치 않게 섞인 색과 떨어진 물감의 자국은 작가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위한 단서가 되며 꼬리잡기를 하듯 이어진다. 말하자면 각 화면은 행위의 잔상이자 다른 화면과 계속해서 이어지는 서사의 한 조각인 것이다. 비정형의 형상과 겹쳐진 물감의 궤적은 즉물적인 감각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며, 관객에게 작가의 에너지를 전이시키는 매개로서 생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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